[기획] 백제 첫 도읍지는 하남일 가능성 높다
[기획] 백제 첫 도읍지는 하남일 가능성 높다
  • 하남매일
  • 승인 2019.05.0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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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리 건물터는 백제 왕궁일 듯…학계·시민단체 전문가들 발 벗고 나서.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에서 저자들은 풍납토성이 정말로 잃어버린 백제의 첫 도읍지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일대 지역이 백제의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임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하남시 시민운동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백제의 첫도읍지에 대한 연구가 가시화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백제  왕궁터

백제의 첫 도읍지가 어디냐에 따라 하남시의 위상은 물론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남시의 경우 유력한 백제의 첫 도읍지임라는 과학적 근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은 물론 학계에서도 뒷전에 놓여 있었다.

백제에 대한 관심과 흥미에 물꼬를 튼 것은 지역 역사 향토문화 연구자들이다.  하남문화유산지킴이 시민위원회(상임원장 유병기)는 시민들로 구성된 하남시 역사연구 모임이다.

이들은 처음엔 하남의 역사에 관심을 갖으면서 흥미로 시작했지만 점차 하남역사의 깊은 매력에 빠지면서 매달 깊이 있는 학습과 초청 강연 그리고 답사를 통해 하남이 2천년이 넘는 고도(古都)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전문가들의 초청강연 등을 통해 하남시가 백제의 첫 도읍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임을 확인하고 자비를 들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자료 수집은 물론 유물 유적 답사를 통해 증좌를 찾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 백제 왕궁터

사정이 이렇게 되자 학계의 전문가들도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하남시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였음을 주장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순제 교수, 20년 이상을 하남을 답사하며 이희진 교수와 함께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라는 책을 써낸 건축가인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 오래전부터 하남역사에 대한 연구로 명망이 높은 백제문화연구회 한종섭 교수가 그들이다.

이외에 충남대학교 도수희 명예 교수도 하남이 백제의 첫 도읍지임을 주장하는 원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 하사창동의 신초석

 전문가·지역연구자, 연구가치 충분하다…하남문화원도 한성백제 연구에 기여

 

하남문화원(원장 유병기)도 한 몫하고 있다.

하남문화원은 한성백제 시기 하남시의 문화유적답사를 계획하는 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 백제연구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성백제를 주제로 강연을 개최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문화원은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학자들을 초청,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해 시민사회에 연구 분위기를 조성했고 활발한 한성백제 연구에 기여를 해 왔다.

하남문화유산지킴이 시민위원회를 비롯한 독자적인 시민 연구자들은 한성백제 공부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하남의 정체성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일반시민들도 교양의 차원을 넘어 하남시의 정체성과 하남의 발전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제의 첫 도읍지로 관심을 모아 온 곳은 세 곳이다.

현재 서울시와 강동구를 중심으로 주장되고 있는 풍납토성, 몽촌토성 그리고 하남시 춘궁동이 바로 전문가들의 비상한 관심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백제 왕조 700여년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한성백제 시기, 웅진백제 시기, 사비백제 시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시기는 바로 한성백제 시기이다.

한성백제는 백제가 최초로 건국된 BC18년부터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인 AD475년 까지 하남위례성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500년간의 시기를 일컫는다.

700년 가까운 백제의 역사 가운데 웅진백제(공주)와 사비백제(부여) 시기는 불과 185년으로 아주 짧다. 나머지 500여년  한성을 도읍 삼은 시기 즉 '한성백제'는 지금까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혀져 왔다.

그러다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판축토성인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수도인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성백제에 대한 새로운 주장에 전문가는 물론 일반 세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풍납토성에서 도읍지로 추정할만한 결정적인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지 않았다.

풍납토성이 도읍지로 될 만한 발달 수준도 문젯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한성백제의 첫도읍지로 일부에서 주장되어온 하남시 춘궁동이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문화유산연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는 하남”… 교산리 건물터도 백제 왕궁일 듯”

하남시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는 문화원 초청 강연에서 “하남시 춘궁동이 한성백제 초기 첫 도읍지임이 틀림없다”며 “하남에 대형목탑의 흔적이 있는 것은 백제의 지배이념으로 작용한 불교가 이 지역에서 융성한 것으로 보이며, 대형 탑과 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왕성이고 도성의 중심이다”라고 건축학적 측면에서 주장한다.

그는 하사창동 주변에서 발견되는 천왕사 절터도 도읍지임을 증명하는 중요 자료라고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변이 22미터인 거대한 목탑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이 심초 석은 지금이 205센티미터로 건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 심초석의 크기로 보아 국내 최대로 일컬어지는 황룡사 목탑에 필적하는 규모라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목탑이 존재했다는 것은 한성백제의 규모와 도읍이었기에 이런 목탑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희진 교수는 풍납토성의 경우 너무도 초라한 규모여서 왕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성이면 그에 걸맞은 왕성이 있었을 텐데 주춧돌 하나 발견되지 않았고 도시에 어울리는 구조를 찾을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풍납동의 경우 지리적으로 한강 바로 옆이어서 여름이면 쏟아지는 홍수피해가 있는 강변에 도성을 건설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오순제 교수도 검단산에 동명제단이 있는 것은 백제의 왕들이 왕위에 오른 후에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중요한 유물이라는 것이다.
 
‘검단’이라는 명칭 또한 ‘검’은 ‘신성하다’란 의미이고 ‘단’은 ‘제단’을 뜻한다며 검단산이 신성시 되었다는 것이다.

오교수는 구체적으로 현재 교산리 건물터가 있는 곳을 백제 왕궁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현재 이곳에는 수십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고, 오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주춧돌 아래로 겹겹이 주춧돌들이 쌓여져 있어 왕궁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유병기 하남문화원장은 “앞으로 한성백제 첫 도읍지에 대한 연구와 발굴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조선왕조에 비견되는 5백년 역사를 가진 국가의 도읍조차 찾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왜곡되지 않고 정상적인 발굴과 연구를 통해 바른 역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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